변화의 파도 앞에서 길을 묻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많은 교회가 방향을 잃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던 익숙한 방식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일지 모릅니다. 변화의 파도는 거세고,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그 해답의 실마리를 우리는 놀랍게도 초대교회의 역사, 특히 사도행전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보여준 통찰은 21세기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나침반이 됩니다.
하지만 교회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은 단순히 과거의 방식을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놀랍고, 때로는 역설적이기까지 한 아이디어 속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교회의 미래를 열어갈 다섯 가지 충격적인 통찰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도전 속에서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1. ‘프로그램’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플랫폼’이다
첫 번째 통찰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입니다. 이제 교회는 성도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제공자(Program Provider)’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플랫폼(Platform)’이 되어야 합니다.
플랫폼으로의 전환은 교회의 영향력을 교회 건물 안에 가두지 않고 지역사회와 세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확장시킵니다. 교회는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필요를 채우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연결의 중심, 즉 허브가 될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플랫폼 역할
사도행전의 안디옥 교회는 당시 세계적인 도시 안디옥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아우르는 허브였습니다. 특정 계층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어우러져 교제하고, 바나바와 사울 같은 리더들을 통해 말씀의 은사를 공유하며, 세계 선교를 위한 첫 선교사(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는 사람과 은사, 그리고 비전을 연결하여 더 큰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모델이었습니다.
2. 선교 ‘자체’인 비즈니스로 (BAM)
두 번째 통찰은 일과 신앙, 그리고 선교의 관계를 재정의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선교를 위한 비즈니스(BFM)’에 익숙했지만, 이제 패러다임은 ‘선교로서의 비즈니스(BAM)’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BAM은 비즈니스 활동 그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수행하는 거룩한 행위이자 선교라고 봅니다. 우리의 일터가 곧 예배의 현장이자 선교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를 통해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고 좋은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과정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적 행위가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일과 신앙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들은 오늘날의 직업 목회자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를 들어, 핵심 리더였던 사도 바울은 스스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자비량으로 사역했습니다. 이는 그의 일이 선교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는 통로, 즉 선교 그 자체(BAM)였음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은 각자의 일터라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3. 다음 세대에게는 ‘오래된 새로움’이 통한다
세 번째 통찰은 다음 세대 사역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우리는 흔히 젊은 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더 새롭고, 더 트렌디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반대의 사례가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고풍 유행이 아니라, 가벼운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다음 세대가 오히려 변치 않는 본질과 깊이에 대한 영적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진짜 부흥은 트렌드를 좇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붙들 때 일어납니다.
안디옥 교회의 본질 중심
안디옥 교회는 세상의 유행이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좇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나바와 사울이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행 11:26), 변치 않는 '주의 말씀' 자체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복음의 본질에 집중했을 때,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정체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피상적인 흥미가 아닌, 진리의 깊이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임을 증명합니다.
4. ‘거룩한 비효율’이 공동체를 살린다
네 번째 통찰은 효율성과 성과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경영의 논리를 거스릅니다. 이 ‘거룩한 비효율’은 교회가 ‘거룩한 자발성’이라는 핵심 원칙을 붙들 때 나타나는 힘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런 방식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의무감에 짓눌린 소진을 막고 훨씬 더 건강하고 유연한 공동체를 만듭니다. 자발성의 기쁨이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안디옥 교회의 거룩한 자발성
안디옥 교회의 사역은 철저한 계획이나 효율성보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도들의 자발성에 기반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은 "각각 그 힘대로"(행 11:29) 드린 자발적 헌신이었고, 첫 선교사 파송 역시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결과였습니다(행 13:2). 이는 조직의 논리가 아닌,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반응하는 '거룩한 자발성'이 교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핵심 동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5. 세계를 품으려면 ‘글로컬(Glocal)’이 답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통찰은 미래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는 키워드, ‘글로컬(Glocal)’입니다. 글로컬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의 합성어로, “세계를 향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특성에 맞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선교는 이제 일방적으로 떠나는 ‘가라(Go)’의 개념을 넘어, 우리에게 온 이들을 섬기는 ‘오라(Come)’의 개념을 포함하는 양방향적 활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의 다문화 이웃을 섬기는 것이 곧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글로컬(Glocal) 선교
안디옥은 로마 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적인(Global) 도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지역(Local)에 와 있는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한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지역 안의 세계를 품는 '글로컬' 사역에 충실했을 때, 비로소 세계를 향한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는 우리 곁에 와 있는 이웃을 섬기는 것이 곧 세계 선교의 시작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새로운 연결을 꿈꾸며
교회의 미래는 더 이상 하나의 정해진 모델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미래 교회는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대신, 새로운 연결을 촉진하는 플랫폼이 되어 번성합니다. 이 연결은 신자들이 일상 업무를 선교(BAM)로 여기도록 힘을 실어주며, 삶의 모든 측면에 신앙을 통합시킵니다. 이 통합된 신앙은 덧없는 유행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의 ‘오래된 새로움’ 속에서 깊이를 더하고, 조직의 효율성 대신 ‘거룩한 자발성’에 기반한 공동체에 의해 지탱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활기차고 진정성 있는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밖으로 돌려 바로 문 앞에 있는 ‘글로컬’ 선교지를 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의 파도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에게 던해진 질문은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연결’
(보기)을 만드는 것일까요?"
새로운 연결: 정관장안 이주민 상생플랫폼
'정관장안 이주민 상생플랫폼'은 지역 사회에 거주하는 이주민들과 교회의 자원을 연결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혁신적인 온라인 허브입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성도들은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이주민들을 위해 나눌 수 있고, 지역 소상공인과 함께 상생의 기회를 만들며,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 가정은 실제적인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모든 연결이 일어나는 신뢰의 장(場)이 되어, 건물 밖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연결'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